상사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김 대리 이야기
김대리는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자기만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사회에는 엄연히 갑과 을이 있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이름표를 붙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업무 기회를 쌓고 싶다면 대기업으로의 이직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헤드헌터의 추천을 적극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그녀는 대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새 직장으로 오니 업무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팀장이나 임원을 대하는 것이 참 어렵네요. 상사에게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하고, 어떻게 어필을 해야 하나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나이 차이도 별로 없고 개방적인 상사였기에 지금보다 훨씬 편안하게 수평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기업에 오니 다소 “아버지와 같은 권위적인” 상사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와 같은 권위적인”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대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이어졌다. “저희 집은 반대였어요. 엄마는 저에게 별로 말씀이 없으셨고요. 오히려 아버지께서 학업이나 생활습관에 대해 잔소리가 많으셨어요. 저는 아버지의 이런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더 세게 반응을 했어요. 말하자면, 반항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제가 하는 행동을 많이 답답해했던 것 같고요, 저는 아버지의 그런 간섭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요. 때로는 좀 짜증이 나기도 했어요. 뭐 이런 것까지 아버지가 간섭해야 되나 싶었죠.”
김대리의 아버지는 작은 회계사무소 사업체를 꾸려가면서도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관심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냥 버럭 화만 내실 줄 아셨지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는 법은 모르셨던 것 같아요.” 그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다 그랬을 것이라는 말로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게 다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지만, 당시에는 그냥 간섭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버지의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네요. 동시에 김대리님의 부담감이나 짜증도 잘 이해가 되네요. 혹시 이런 감정이 상사를 대할 때도 반복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나의 질문에 김대리는 “맞아요! 진짜 그런 것 같네요.”라며 맞장구를 치고선 상사와의 관계에서 통찰을 얻었다. “사실, 최근에 평가결과가 나왔는데, 제가 생각한 것 보다 좋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좀 실망이 되었죠. 면담을 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이해는 되었지만, 어필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또 어필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었습니다. 어필을 하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질까 혹은 나만 생각하는 못된 여자로 여길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도 제대로 못해봤습니다. 코치님 말씀대로 아버지에 대한 부담감에 갇혀 상사에게 어필도 제대로 못했나 봅니다. 이거 참 씁쓸하네요.”
이후 우리는 상사와 커뮤니케이션 제대로 하기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을 세웠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우리는 이를 용기 프로젝트라 이름을 붙였다. 그녀와 나누었던 용기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그대와도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회피에서 벗어나기 위한 용기
용기란 ‘위험하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는 일에 대해서 물러서지 않고 맞서서 대응하는 태도’ 혹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개인적 확신’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용기는 3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1단계는 회피 단계다. 과거에 집착하면서 현실에서 도망가는 단계다. 김대리가 지금까지 아버지 혹은 상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왔던 방식이 회피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녀뿐만 아니다. 관계가 서먹하고 어려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는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행복한 해피엔딩을 위한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직시하는 작은 용기를 내는 일이다. 무엇이든 작은 첫 용기가 어려운 법이다. 일단 시작만 하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2. 포기도 주장도 아닌 균형을 잡으려는 용기
용기 2단계는 시도 단계다. 김대리의 관점에서는 상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일시적으로 공격적인 자기주장을 펼쳐 상사를 곤혹스럽게 하는 정반대의 시도를 해보지만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계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단계에서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좌측의 무관심한 자기포기와 우측의 공격적인 자기주장 둘 간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표현(assertiveness)이라고 한다. 자기표현이란 ‘공격적이지 않게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포기하지 않고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회피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라면, 자기표현은 포기와 주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용기를 의미한다.
3. 본질을 향한 지속적인 용기
용기 3단계는 도전 단계다. 도전이란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인 학습과 성장의 기회로 삼는 태도’를 의미한다. 김대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표피적인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아버지와의 커뮤니케이션에까지 접근하여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맞서 싸우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의 핵심은 지속적인 과정으로서의 용기다. 한 번의 용기를 내는 일은 쉽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용기를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되고, 이 학습으로 우리는 새로운 성장을 하게 되고, 이 성장으로 우리는 지속적인 도전을 계속하게 되는 선순환의 힘을 얻게 된다. 이런 용기를 그대는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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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능륭협회컨설팅 혁신리더 잡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개인적인 용도는 가능하나 상업적 용도로 다른 매체에 기재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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